fiogf49gjkf0d“오래 앉아계십시오” : 開城工團 訪問記
(주)이글코리아 방 성 석
황해북도 개성시 선죽동 자남산려관 2층, 남북인사 40여명이 함께하는 오찬장.
유독 우리 테이블엔 화기가 애애하다. 아마도 개성이 고향인 70대 남측 어른의 회고담 때문이리라. 한 참 분위기가 무르익는 가운데 갑자기 북측 인사가 한마디 던졌다. “어르신, 오래 앉아계십시오!”우이? 순간, 우린 모두 당황했다. 아니 무엇이 잘못됐나? 왜, 오래 앉아 있으라는 거야? 그러자 북측 인사는 금세 상황을 깨달은 듯, “아니, 오래 오래 사시라는 뜻입니다.”
2005년 12월7일, 난생처음 북한, 개성공단을 방문한다니 약간의 긴장과 흥분이 감돌았다. 아침 7시30분, 압구정동을 출발한지 채 한 시간이 못되어 도라산 남측 출입국사무소(CIQ)에 도착했다. 간단한 출국절차를 마치고, 50년 넘게 찬 바닥에 누워 잠든 녹슨 철마(鐵馬)를 바라보며 북측 CIQ에 도착하는 데는 불과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아! 이렇게 지척(咫尺)인 것을.......
오늘 개성공단 방문은 로만손시계 김기문 사장의 초청으로 이루어 졌다.
함께 공부한 인연의 김기문 사장은 로만손의 개성공단 첫 작품으로 통일시계를 생산했고, 그 판매이익금으로‘통일벽시계’5천개를 북측 전역의 4천8백여 소학교에 전달하는 뜻 깊은 자리다. 남북간 경제협력이 통일시계의 시간표대로 이루어지길
염원하면서 개성공단을 둘러보았다.
개성공단은 상상을 초월하는 대규모로 남북협력의 상징이요 통일한국의 현장이었다. 이제 겨우 1단계 1백만 평이 개발되는 서곡에 불과하지만 전체 개발목표는 개성시 일원 2천만 평으로, 공업단지 8백만 평, 신도시 1천2백만 평이다. 기존도시가 4백만 평이니 5배로 커지는 개성이다. 2012년까지 3단계 개발이 끝나고 2천개 기업이 입주하면 50만 명 인구에 연간 생산액은 2백억 달러에 달한다. 토지이용기간 50년에 취득, 양도, 임대, 상속이 가능하다. 기업소득세는 14%이나 5년간 면제, 3년간 50%면제 이후이다. 통신이 자유로워지고, 무비자 통행이 가능해지고, 자유송금이 이루어지는 조건에 기초 노임이 57.50달러/월 이다. 공단지역 여기저기엔 크레인이 올라가고 있었고 건설의 해머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미 입주한 10여개 초현대식 공장건물엔 북측 근로자 5천7백 명, 남측 근로자 5백 명이 상주하고 있었다.
‘통일 벽시계’전달행사가 끝난 후 북측의 배려로 오찬과 함께 개성시내를 관광할 수 있었다. 멀리 임신한 여인처럼 누워있는 송악산(松嶽山), 그 어디쯤 박연폭포 아래 명기(名妓) 황진이가 명유(名儒) 서경덕을 유혹하고 있을 법하다. 그러나 한가로이 역사 속으로 빠져들기도 잠깐, 창 밖에 펼쳐지는 풍경에 가슴이 아리다.
왜냐하면 내가 보았던 개성공단엔 분명 허허벌판인데도 공장이 많았고, 도로공사 중인데도 차량은 많았고, 현대식 공장엔 사람들이 많았고, 공장에는 제품들이 많았고, 무엇보다도 북측 근로자들 표정엔 미소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 보이는 개성시내는 역사의 시계바늘을 뒤로 돌린 서글픈 모습이다.
산은 있으되 나무가 안 보이고, 교통순경은 있으되 차량이 안 보이고, 호텔(려관)은 있으되 손님이 안 보이고, 백화점은 있으되 상품이 안 보이고, 낡은 집은 있으되 새 집이 안 보이고, 구호는 많으나 잘 살자는 구호는 안 보이고, 사람들의 표정엔 미소가 안 보인다. 오호, 애재(哀哉)라!
착잡한 느낌이 교차하는 가운데 오찬은 계속되고, 로만손과 함께 행사를 주관한 경희대 이광재 부총장의 건배, 로만손 홍보대사인 영화배우 정준호의 건배가 이어졌다. 그리고 내가 자청해서 건배제의에 나섰다. 개성공단은 기업인의 힘으로 이루어지는데 기업인의 건배사가 없어서야 되겠는가, 자청해서 건배를 제의하기는 지금껏 처음이다.
“저는 남측의 기업인 (주)이글코리아 방성석 사장입니다.
먼저 오늘 로만손 김기문 사장께서‘통일벽시계전달식’을 갖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저는 기업인의 입장에서 건배를 제의하고 싶어 자청해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저는 25년간 무역을 하면서 전 세계 52개국을 돌아 다녔습니다. 중동, 아프리카, 서아시아, 중남미 등 아주 멀고 먼 곳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북쪽 땅을 이제야 밟게 되니 그동안 내가 어디를 돌아다녔나, 마음이 아픕니다.
지금 남쪽의 많은 기업들은 새로운 생산기지를 찾아 중국,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미얀마, 스리랑카 등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저도 이미 15년 전에 중국에 진출했고 북경에 사무실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가까운 곳에 언어문제가 해결되고, 물류문제가 용이하고, 경제협력으로 한반도 평화구축이 가능한 개성공단이 있다는 것은 남북 모두에게 새로운 축복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아직도 어려움이 많겠지만 남북간 상생(相生)으로 협력하면 문제는 해결될 것입니다. 오늘 존경하는 로만손 김기문 사장께서 통일벽시계를 전달했습니다.
이 통일벽시계에 정해진 시간표가 있다면 그 시간표대로 남북의 경제협력, 통일된 한반도가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그 역할의 중심에 개성공단 있고, 또 그 중심에 로만손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저의 건배는 ‘당나귀’로 하겠습니다. 당나귀는 -당신과 나의 귀한 미래를 위하여-입니다. 남과 북의 귀한 미래를 위하여! 당나귀! 당나귀! 당나귀! ”
즉석에서 행한 건배사 치고는 나 자신도 흡족했고 여러 분들의 과찬이 이어졌다.
덕분에 홀짝 홀짝 마신 들쭉술로 얼큰해진 기분에 오찬장을 나오니 바로 코앞이 그 유명한 선죽교(善竹橋)라. 이성계의 아들 방원(芳遠)이 고려 충신 포은(圃隱) 정몽주를 살해했던 선죽교는 길이 8,35m 폭 3,3m로 생각보다는 크지 않았다.
마치 남에서 온 후손들에게 포은의 선혈(鮮血)을 보이고 싶지 않은 듯 커다란 함박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선죽교를 뒤로하니 불현듯 들려오는 하여가(何如歌)는 웬일인가.
잘 산들 어떠하리 못 산들 어떠하리
백성들 못 먹어서 굶주린들 어떠하리
우리만 잘 먹고살아 백년까지 누리리라
오호, 통재(痛哉)라! 어느새 나는 포은이 되어 단심가(丹心歌)를 읊조리니;
두 몸이 하나 되어 세계를 향해 뛰면
조상도 기뻐하고 후손들도 좋으리니
남북이 하나로 뭉쳐 전 세계로 나가세.
하여, 한반도여! 통일된 조국으로, 번영된 조국으로, 이 지구상에‘오래 오래 앉아계십시오’
2005.12.7. 개성공단을 방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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